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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나와요
군대 가기 전에
20대 극 초반때
내 피부는 정말 하얀 피부였음.
(화장 안함)
그리고 손이 작았음.
그래서 작은 손이 엄청 하애서 주위 사람들이 아기손 같다고 많이들 애기하심.
버스나 지하철 타면 몰르는 여자들이 손 잡고 비비고 많이 갔었는데..
군대 가서 피부가 탄뒤로 옛날 피부가 사라졌다..
아쉽다...
(이 애기를 하니 주위에서 아쉽냐면서 웃었다.)
(..지금은 타버린 나의 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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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이었지.
웹퍼블리셔를 지원할려고 했는데
혼자서 공부하고
혼자서 비슷한 사이트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참 개떡같이 만듬)
넣어도 전화도 안오고.
다 경력자만 원하고
그때 당시 최소 조건이 "국비 출신이었다."
(웹퍼블리셔는 여자면 무조건 ok로 알고있다.)
(지금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간 전공자를 우대 + 외모를 많이 본다. ---> 웹프론트엔드 기준)
그래서 포기하고 공장 생산직에 들어갈려고 이력서를 준비했었다.
(그때 당시 경제 불황)
오뚜기 오산역에 있는 공장에 다닐려고 이력서를 넣는데.
(그때 당시 박근혜때 경제가 어마어마하게 안좋았음).
사람들이 대기업에 꼭 들어가서 일하고 싶더고
오뚜기 공장에 몰렸었다..
(공장이라 힘들어서 사람들이 금새금새 그만둔다.)
근데 오뚜기 공장 들어가고 싶으면 1달을 기달리라는 통보를 받았다.
(2달도 가능하다고 애기도 하심).
(원래 기숙사는 먼저 회사에서 구해주고 / 일하는 구도였는데.)
(지원자가 몰리니간 기숙사부터 구하면 일 시켜준다는 어처구니 없는 애기도 했다.)
(그것도 바로 일하는게 아니고. 1달 가량 기달리고)
근데 지금은 그런게 없고.
다들 무슨 사무직 / 앉아서 하는 일만 찾는다.
라떼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웹퍼블리셔 실패 후 공장 넣는데.
지원자가 몇십명 ~ 100명 가량이었는데.
현 2030은 진짜 문제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뒷짐 지고 "에휴 ㅉㅉ 요새것들 문제가 많아"라면서 컴퓨터를 껏다)

참 옛날 생각 많이 난다.
크으..
여자들이 내 손 잡고 "꺄아~~" 이럴때도 떠올르고.
웹퍼블리셔 실패 후 공장 찾던 나.
그리고 교대 근무하면서 버티다가 실업급여 받은 나.
코로나때 웹개발자 부족했을때 개나소나 들어가던 웹개발자를 못한 나
(지금은 웹개발자가 충분하고. 지원자가 넘침)
(근데 솔직히 안한게 나은듯)
(허 저거 매일 바뀔때마다 얼마나 열받는지.)
(지금도 난리다. 리액트의 단점이 문제가 많아서 생긴 언어가 스벨트다.)
(이 스벨트가 자본이 없어서 소규모~중간만 지원하다 보니간 인기가 없었다.)
(왜냐고? 리액트는 페이스북에서 만든 언어라 "대규모"를 지원 한다. / 하지만 스벨트는 "소규모~중간 규모"만 지원한다.)
(하지만 스벨트가 요새 뜨기 시작하면서 리액트 대체제로 떠올르고 있다.)
(그리고 코드를 입력안해도 웹프론트엔드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나온걸로 안다.)
★얼마나 열받는지 봐라
★어쩔때는 다른 일하면서 경매를 생각 중인게 다행이기도 싶기도하고.
★★아쉽기도 한 아죽 애매한 뭐같은 상황이다.
우리 귀엽지한 레이의 "감히 내가 안귀엽다구?" 요약본
흠흠흠흠흠
지금은 102030이 개나소나 웹퍼블리셔, 웹프론트엔드를 하니간 경계가 사라졌지.
라떼까지만 해도 웹퍼블리셔는 여초 직장이었다.
학원에 가면 다 여자거나
남자는 1명~4명이었다.
근데 요새 할게 없으니간
남자들이 들어서면서
성별 구분이 사라졌다.
그리고 웹프론트엔드도 여초 직업이 맞다.
백엔드는 당연 남자 직업이고.
근데 경계 구분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간 초,중,고 학생들이 개나소나 접근하기 시작하고
성공적인 사이트를 만든 어린 학생들도 나오기 시작한 듯 싶다.